갱지
거친 입자와 살짝 어긋난 인쇄, 제한된 색. 인디 진의 따뜻한 질감으로 도시를 본다.
갱지이 그린 기사 (16)
해자는 원리가 아니라 애살이다
AI가 코드를 다 짜주는 시대, '원리를 이해하고 검증하는 능력'이 개발자의 해자로 남을까. 아닐 걸로 본다. 메타가 바뀌면 사라질 해자다. 그럼 뭘 길러야 하나. 부산에선 그걸 '애살'이라 부른다.
흑화한 샐러드
로봇은 팔이 아니라 칩이다
2026년 휴머노이드와 협동로봇은 독립 기계가 아니라 AI 인프라의 말단이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제조 현장이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맞물리는 지점에서 부산이 어디에 들어갈지 묻는다.
그리고
추론이 공짜가 될 때
실리콘밸리에서 모델 호출 단가가 분기마다 반토막 난다. 싸진다는 뉴스가 아니다. 가격이 0으로 갈수록 돈이 모델을 떠나 워크플로와 데이터와 신뢰로 옮겨간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한국 SaaS는 모델 위에 무엇을 쌓을 것인가.
VALLEY
즉흥연기하는 NPC의 정치학
생성형 AI가 게임 캐릭터의 입을 빌리는 순간, 대사를 쓰던 작가의 권력이 시스템으로 넘어간다. 통제 가능한 즉흥성을 설계 자산으로 만드는 쪽이 다음 게임 산업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전산 장애는 국가 부채다
차세대 행정망과 금융망이 멈출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사고로 읽는다. 사고가 아니라 미뤄둔 청구서다. 한 나라가 자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굴려온 시간의 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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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매겨진 가격표
온체인 예측시장이 '진실의 가격화'로 번지고 있다. 베팅이 저널리즘의 신뢰 기능을 갉아먹을 때, 공론장은 어느 부품부터 부서지는가.
명암
에셋이 공짜가 되면
2026년 생성형 AI 게임 제작 툴 붐의 진짜 변화는 '제작 자동화'가 아니다. 코드와 그림이 거의 공짜가 되는 순간, 희소성은 디렉션과 큐레이션으로 옮겨간다. 이 병목의 이동을 읽지 못하면 만들 줄은 알아도 팔 줄은 모르는 스튜디오만 양산된다.
그리고
투명한 가챠의 알리바이
확률을 공개하면 도박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공개된 확률은 면죄부가 됐고, 가챠는 더 정교해졌다. 누가 비용을 떠안고 누가 통제권을 쥐는지 다시 묻는다.
명암
길드 토큰이 회계를 만났다
P2E의 폭락은 게임의 실패가 아니라 회계의 실패였다. 재미를 토큰으로 바꾸려던 실험에서 살아남은 자산을, 가격이 아니라 대차대조표의 언어로 다시 읽는다.
원화방어선
게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셧다운제는 사라졌는데 그 자리를 채울 언어가 없다. 한국은 게임을 산업으로도 문화로도 정의하지 못한 채 규제의 빈칸 위에 서 있다. EU와 중국은 이미 게임을 국가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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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이 자본을 대체한다
크라우드펀딩, 퍼블리셔, 정부지원의 삼각구도가 무너진다. 인디 게임 창업자의 돈은 이제 '작은 후원 다수 + 얼리액세스 현금흐름'에서 나온다. 자금조달 구조가 바뀌면 누가 살아남는지도 달라진다.
엑싯요정
상장 아니면 죽음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사지 않는 나라에서 출구는 IPO 하나뿐이다. 그 좁은 문 하나가 창업가의 위험 감수를 어떻게 조용히 보수화시키는지, 생태계 구조에서 다시 본다.
엑싯요정
파도 옆에서 일한다는 것
부산에서 일하는 사람의 진짜 자산은 사무실이 아니라, 사무실과 파도 사이의 짧은 거리다. 동네를 고를 때 보는 건 전망이 아니라 전환의 속도다.
퇴근길
신앙이 리텐션이 될 때
온라인 예배와 AI 법문, 기도 구독앱은 종교를 한결 편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편리함의 청구서는 누구에게 가는가. 신앙공동체가 앱의 과금 구조로 분해될 때 영성에서 무엇이 조용히 빠져나가는지를 묻는다.
명암
'AI 전면 도입'의 진짜 질문은 깔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거부권을 내려놨느냐다
전면 도입이라는 헤드라인 밑에서 실제로 새로 그어지는 선은 기술 스택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 거부권의 소유권이다.
남포 데스크
울버린이 들켜버린 모션
AI가 아직 덜쓰인 게임, PS5 '마블 울버린' 공식 인플레이 공개 킹인섬니아니까 내용은 겁나 좋은거 같고 엔진 이즈 굿굿인데... 뭔가 스
흑화한 샐러드